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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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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남 (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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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부검을 하게 되었다

퇴사 2일전, 연구소장님께 점심을 얻어먹으며 넷플릭스의 퇴사 부검 문화를 듣게되었다. (저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 넷플릭스의 퇴사문화)

식사 내내 회사가 나아가야할 방향과 변화하고 있는 것 등등 이야기를 나누었고, 퇴사하는 마당에 이런 얘기를 하고있는 나를 보니 회사와 나는 참 애증의 관계이구나 싶었다. 그러던 와중 퇴사 부검 이야기가 나왔고, 재미있겠다 싶어 이 글을 쓴다.

애증의 회사의 첫 퇴사 부검이니 만큼 뒤 이어지는 퇴사 부검이 단순히 인사치레가 아닌 더 나은 회사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이 되도록 최대한 솔직하고, 의미있게 작성해 볼 것이다.

비록, 넷플릭스의 부검 메일과는 다르게 덧붙이는 말 까지 작성할 것이다. 그만큼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이해하셨으면..

넷플릭스의 부검 메일

이 중에서 아래 4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덧붙이고싶은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1. 왜 떠나는지
  2. 회사에서 배운 것
  3. 회사에 아쉬운 점
  4. 앞으로의 계획
  5. 덧붙이는 말

물론 나는 떠나기에, 피드백은 받을 수 없겠지만 아무튼 시작합니다.

왜 떠나는지

사실 왜 떠나는지에 대해 쓰는게 굉장히 어색하다. 처음 주변 동료들에게 퇴사를 이야기 했을 때 아무도 '왜요?' 라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터질게 터졌다 라는 반응에 더 가까워서..

나는 이 회사를 6년이상 다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흔히 말하는 요즘 개발자의 이직 사이클에 비하면 길게 다닌 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나를 6년이나 다닐 수 있게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떠나는가

  • 느릴 수 밖에 없는 의사결정 프로세스와 장기적인 목표의 부재

    재직시 내가 몸담고 있던 조직, 내가 담당하는 제품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수많은 컨펌이 이뤄져야 하는 조직이다. 크게는 영업, 품질, 기획, 지원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에 추가로 개발 조직 내의 타 팀과도 협의가 이뤄져야 하는 조금은 피곤한(?) 위치에 있었다.

    각 조직별로 이해관계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었는데, 각자의 R&R이 명확하다 보니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경우가 꽤 있었다. 이에 피로감을 개인적으로 많이 느꼈는데, 나는 이 원인을 장기적인 목표의 부재라고 생각했다.

    축구를 예시로 들자면, 공은 하나인데 골대가 여러개인 느낌이었다. 모두가 하나의 골대를 향해 공을 넣기위한 노력을 해야하는데, 각자 다른 골대를 향해 공을 뺏고 뺏기는..

    이를 강하게 드라이브할 수 있는 개인 또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회사의 기조상 내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에 한계를 느꼈다.

  • 어느새 느려진 발걸음

    가장 이상적인 회사생활은 역시 나와 회사가 같이 성장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회사의 성장이 느려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회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을 수도 있다. 성장이라 함은 꽤나 주관적인 영역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체감하기에 나도 회사도 어딘가에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는 도전이 필요했고, 열정에 기름을 붓고 싶었다.

    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재미있게 일하고 싶었기에 불구덩이에 나를 밀어 넣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6년이나 이곳에 남아 있었을까

이곳은 참 좋은 회사다. 이 말에는 많은 의미를 담고있는데, 우선 좋은 사람들과 배려하는 분위기가 갖춰진 아름다운 환경이다.

또 하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엄청 많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웃긴 얘기일 수 있지만 입사와 동시에 조직의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다시 생각해보면 전후 사정에 대한 이해도 없이 함부로 생각한 경향이 없잖아 있는데, 결과적으로 패기있고, 열정적으로 회사를 다니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책임감과 처음부터 함께한 제품에 대한 애정으로 어찌보면 계속 이곳에서 함께 했는데, 돌아보니 애정이 많이 식었다. 이게 떠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되는데, 결국 위에 서술한 내용이 애정을 식게 만든 도화선이 아니었을까

회사에서 배운 것

같이 일하는 방법

이것이 가장 큰 배움인 것 같다. 입사 초창기에 나는 동료와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로인해 많은 충돌과 잡음을 몰고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쩜 그리도 재수없었는지

그맘때쯤 시니어는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단순히 연차가 쌓인다고 시니어는 아닌 것 같고.. 처음에는 내가 하는 분야를 잘 하면 단순히 그것이 시니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내가 아는 것을 잘 전달하고 알려줄 수 있는 사람, 설득력이 있는 사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Next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시니어라는 생각이 자리잡혔다.

즉, 요약하자면 누구든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시니어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 무엇도 만족할만한 부분이 없었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이곳에서 내 나름대로의 시니어를 향한 발걸음을 한 발자국쯤은 내딛었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아쉬운 점

여느 회사원이 그렇듯 누구나 불만은 있다. 개인적으로는 무의미한 비판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사이다스러운 내용은 딱히 없다.

첫째로 의사 결정 과정에서 개발자가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없다는 점이다. 할 수 있는 영역을 떠나 그 전에 알 수 있는 부분이 잘 없다.

이로인해 굉장히 수동적으로 업무를 담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와중에 능동적으로 이것은 왜그럴까 고민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이유가 있겠지 하고 진행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 개발자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딱 코딩만 하기에는 좋은 환경일 수도 있다. 물론 정답이 없는 영역이라 개인적인 소회이다.

두번째로는 채용에 대한 부분이다. 사실 굉장히 말하기 민감한 부분인데,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 가감없이 말하고자 한다.

같이 일하게 될 사람을 뽑는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감이 부여되는 일이다. 그만큼 많은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해가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이 장치라는 것은 지원자의 피로도를 올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을 때 의심보다는 기대가 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시작은 신뢰할 수 있는 채용 프로세스를 갖추면서 애매한 사람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입사할 확률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세번째로는 하고자하는 모든 것을 이루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쉽다. (회사에 아쉬운 점은 아니지만..)

작지만 단단한 팀을 꾸리면서, 하고싶은 많은 것들이 있었다.

자발적 성장을 이루는 팀이 되고자 했는데, 아직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다만 팀원들은 꽤나 괜찮은 개발자로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나보다 더 잘 해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

앞서 말했듯, 나는 위와 같은 이유로 떠난다. 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떠나는 이유가 해소가 되어야 했다. 면접을 보는 모든 회사에 공통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러한 고민을 갖고있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이 빠른가요? 빠르다면 어떠한 이유로 또는 방법으로 빠르다고 생각하시나요?"

공통점은 그 어느 회사도 의사결정 과정이 빠르지는 않다고 얘기하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방법은 모두 다른데, 그 중 스쿼드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는 형태가 갖고있는 고민을 많이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스쿼드 형태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결정했다.

또한 회사의 성장으로 인한 동기부여를 원했기 때문에 seed ~ 시리즈A 규모의 스타트업을 원했다. 그 중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이 나는 곳을 선택했고, 또 다니다보면 아쉬운 점이 보이지 않을까

먼 미래를 이야기하기엔 갈길이 멀다. 다만 목표는 확실하다 언제나 내가 기여한 서비스가 글로벌 서비스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는 내가 하기 나름인데, 다시금 열정을 불태워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말

퇴사가 결정되고, 공교롭게도 실로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이 보인다. 콩을 심어도 싹은 나중에 틔듯 변화를 체감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펜타는 참 좋은 회사다. 또 좋은 동료들이 있다. 나라는 짐승을 그나마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어 준 곳이기도 하다.

능력에 비해 많은 기회와 권한이 주어졌는데, 과분한 경험이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의 20대를 보낸 이곳이 내가 떠나면서 더 좋아지기를 기대한다.